부처님께서는 불행하고 소외된 중생들도 불성이 있고 평등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밝히시며 그들을 어루만지러 이 세상에 오셨다. 손과 발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발이 되어주고 눈과 귀가 필요한 이들에게 눈과 귀가 되어주며 어둠의 늪에서 허덕이는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어 잡아준다면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마음이며 부처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수화는 청각장애인들의 언어이다. 청각장애인들은 의사소통의 장애로 수화통역사가 곁에 없으면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 우리는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말을 배우고 그것으로 서로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서로를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말과 소리를 잃어버린 청각 언어 장애인들은 가족들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큰스님들의 법문도 수화통역사가 없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일요일 법회에서의 일이다. 부처님께 참회 발원을 위해 모인 청각장애인들은 법문 중에도 불교의 전문용어들을 접하며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어려워했다. 한 단어라도 더 배우고 알기 위하여 수화를 하는 나의 두 손길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는 그들을 보며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감사함을 느꼈다.
오래 전의 일이다. 한 법회에서였다.

“천수천안 관세음 보살님은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소리를 관하시며 고통 받는 중생들을 보살펴주시는 세계에서 가장 멋진 사회복지 실천가이십니다. 우리도 비록 육체적인 장애는 있지만 고통 받는 이웃들이 있으면 바로 달려갈 수 있는 천수천안의 관세음보살이 되어야 합니다.”

법문을 하자 한 장애인 법우가 손을 들고 말했다.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소리를 보시는 분이면 청각장애인들의 스승이시네요. 우리도 소리를 수화를 통하여 눈으로 읽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청각장애인들을 잘 이해해주시고 사랑해 주시겠지요.”

처음 그들을 만났을 때 타종교에 비교하면 장애인 단체도 부족하고 전문학교도 없고, 대화의 장도 열리지 않았다고 아쉬워하고 불평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이 불교 포교사가 되어 도반들을 포교하겠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더욱 감동적인 것은 육체적인 장애로 인하여 누군가에게 도움 받기를 원했지만 오랜 시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며 비록 그들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서 베풀어야 한다는 자세로 이들의 마음가짐이 변화했다는 것이다. 이제는 그들도 도움을 받는 것보다 자신들이 베풀 수 있다는 자체를 너무도 행복하게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불교계의 현실은 각박하다. 사찰 법회에는 제대로 된 수화통역사가 없을뿐더러, 법회 영상물에서 조차 수화안내가 없는 실정이다.

종단 내에서 장애인 전법단을 비롯한 많은 원력을 지닌 이들이 노력하고 있지만 재정적인 문제 등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 실정이다. 지역특성상 계단이 많고 경사가 깊어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라면 엄두를 내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접근조차 힘들어 내왕이 드문 까닭에 사찰이 이들만을 위한 별도의 법회나 신행활동을 열겠다는 발상은 쉽게 떠오르기 어렵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천안제일(天眼第一)’로 일컬었던 아나율 존자는 시각장애인이었다. 많은 사찰에 수화통역사가 배치되어 법회 및 강의를 수화로 통역해준다면 청각장애인들은 불자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찰을 참배하며 불교신행 활동이 활발해질 것이다. 이들 중에 21세기 아나율 존자가 나오지 않을까.